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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9.27 응급실에서의 단상

응급실에서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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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나무의 아기가 고열로 잠을 이루지 못해 새벽녁에 급히 차를 몰아 응급의료센터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흥분된 환자와 보호자에 비해 다소 정이 떨어질 정도로 사무적이고 피곤에 쩔은 전공의 분들의 심드렁한 응급처치에도, 마치 그 손길이 의사의 손길이라는 것을 아는지 내려가는 아이의 열을 보면 참으로 무언가 알고 하는 사람과 모르고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이렇게 틀려질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늦은시간 응급실은 많은 군상들로 가득합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한번에 다섯명이 들이닥친, 이제 막 스무살이 넘음직한 젊은이들은..
과연 명절연휴 마지막날 무슨 연유로 이 시간에 저리되어 왔을까.
이제 9개월에 접어드는 나무의 아기와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 남자아이는 시종 입조차 떼지 못한채 산소호흡기와 각종 링거액들에 둘러쌓여 과연 사람에게 달려있는 장치들인지 장치로 움직이는 로봇인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모습도 봤습니다.

새벽녘.
아이의 열이 점점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긴장이 풀리니 그 와중에도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리저리 헤메다 지하에서 찾은 편의점. 그곳에서 훔치듯 몇개 쑤셔담아 가지고 올라온 몇봉지의 빵과 우유두개.
그것을 아내와 나누어 먹으며 주위를 둘러보자니..
참으로 이런 미장센이 나올수 있구나..

통곡하는 부모에게 눈조차 뜨지 못하고 뇌출혈로 의식이 없는 아들

미이라처럼 온 얼굴에 퉁퉁 붕대를 감아맨 젊은이.

그들 사이를 마치 벌들이 서로 부딪치지 않고 날듯, 잽싸게 오가는 의료진과 간호사들.

그 사이에..
너무도 허망히 빵과 우유로 허기를 달래는 모습이..
과연 이렇게라도 살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인가...

새벽녘 한기에 밖으로 나와 막 동이틀무렵 바라본 하늘.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뱉은..
[참으로 파랗다]는 감탄사.

그렇게 또 누군가에게 새로운 하루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열리는 순간.
이미 수년전 이혼한 전 남편의 음독자살을 믿지 못하는,
이제는 남이지만 남이아닌 아내의 통곡을 뒤로하고...

그저 큰 탈없이 열이 내려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오는길은
참으로 새로움이 많고.
참으로 생각이 많았던 하루였습니다.

비단 마음이 무겁고, 하루하루 좀더 그 하루에 무게를 더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것은..
그저 하루 잠못이룬 밤 때문은 아니겠지요.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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